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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좀비영화의 수작 부산행을 통해 공리주의에 관해 생각해보자.


영화적 감상으론 일단 한국 좀비영화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본다.

아쉬운 부분도 물론 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론 잘 했다.


아쉬운 점으론 작품 내적 설정 충돌. 좀비에 대한 위화감이랄까, 문을 못 여는 좀비치고는 너무 사람같이 움직인달까 :)

기차 위에서 점프를 한다거나(굴러떨어져야지!), 기차 뒤에 매달린다거나 등


대전에서 출발한 이후로의 전개도 아쉬운 점이다. 월드워식으로 가려면 현상황을 타개할 기똥찬 해법이 등장하거나, 새벽의 저주 혹은 28일후 식으로 가려면 좀더 암울한 전개나 좀비에게 유리한 전개가 있었어야 하는데,

앞부분과 동일한 내용의 반복으로 전개가 늘어지는 감이 없잖아있다.



그래도 개인 좀비들의 각기라던가, 좀비상황의 현실성 등 전체적인 완성도는 이제껏 한국에선 보지못한 수준이다. 이후 나오게 될 좀비영화의 수준을 한껏 높여놨다는 것에 굉장한 의의가 있다.



공리주의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 개인의 이익보다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을 말한다.

공공은 전체 혹은 사회, 좀 더 많은 이익으로 봐도 무방하다.


이 패러다임은 현재 지구의 정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간단한 문제를 풀어보자.


침몰 직전의 배가 두척이 있다. 한 배를 구하게 되면 다른 한 배는 침몰하게 된다.

한 쪽의 배에는 10명의 승객이, 다른 한 쪽은 100명의 승객이 있다.


어느 배를 구해야하는가?



대부분은 100명의 승객이 있는 배를 구할 것이다. 10명보다 100명을 구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것에 반박을 할 사람은 없을테니까.



다시 문제를 풀어보자.


앞선 문제와 조건은 같다. 두 척의 침몰 직전의 배에 한 쪽은 1천명의 승객이 있다.

다른 한 쪽은 나의 친구와 가족 10여명이 타있다.


어느 배를 구해야하는가?



아마도 대부분이 친구와 가족이 타있는 배를 선택할 것이다. 이는 공리주의에 위배되는 선택이지만 역시 아무도 반박할 수 없다. 나와 사회적으로 관련된 사람이라면 그 가치가 굉장히 올라가게된다.




부산행 중 야구부 소년 3,4명이 타지않아 기차 출발을 하지 말자고 소희가 외치는 장면이다.

하지만 김의성은 기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살기 위해 기차를 출발 시켜야한다고 주장하고, 부기관사는 기차를 출발해달라고 무전을 한다.


기차에 타고 있는 엑스트라 사람들과 김의성, 부기관사는 공리주의적 선택을 한 것이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소희의 입장이 아니라면 김의성의 의견이 합리적이고 타당하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이렇게 자신과 관련없는 타인에 관한 이익문제에는 공리주의가 적용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결과를 마땅하다고 받아들인다. 선택되지 못한 배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고, 옳은 선택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시 한번 문제를 풀어보자.


역시 두 척의 침몰 직전 배가 있다. 이번엔 가족도 친구도 타고 있지 않다. 처음 문제처럼 완벽한 타인들만 있다.

한 쪽의 배엔 1천명의 승객이 있고, 다른 한 쪽의 배엔 1천 1명의 승객이 있다.


어느 배를 구해야하는가? 



가치 차이가 모호한 두 집단의 문제에서 어느 집단의 이익에 손을 들어줘야할까?




부산행 안에서 김의성과 엑스트라 승객들은 계속해서 공리주의적 선택을 한다.


조금이라도 큰 집단의 이익을 위해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역시 공유쪽의 입장이 아니라면 타당한 선택이라 볼 수 있다.

문을 열었을 때의 안전을 아무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선 문을 열지 않는 것이 베스트니까.




조금 감이 오지 않는가?


공리주의의 원칙 안에는 선택받지 않은 집단의 이익은 제로가 된다.


다시 한 번 언급하자면, 공리주의는 현재 지구의 정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는 전세계적인 의자빼앗기 게임을 하고 있는 셈이다.


누군가 자리에 앉게 되면 반드시 누군가가 앉을 의자는 없게 된다.



공리주의의 선택 안에 있는 이상 

이 원칙의 문제점을 알기는 대단히 힘들다.


공리주의는 현재 올바른 것이고, 선택을 받고 있는 나는 올바른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니까.


선택을 받지 못한 집단은 알아차리게 된다.

공리주의의 끝은 멸망이라는 것을.


공리가 적은 집단부터 앉을 의자가 없게 된다.

어쩌면 성소수자부터, 어쩌면 가난한 국가부터.



공리주의를 극복하지 않는 이상 인류의 끝은 필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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